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우옌 왕조 (문단 편집) ==== 코친차이나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프랑스령 앤냄)]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프랑스령 통킹)]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코친차이나)]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베트남을 본격적으로 다 먹어버린 프랑스는 베트남에 본격적인 식민기구 수립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을 3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던 상태였다.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 지방을 [[프랑스령 통킹]]으로, [[후에]]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 지방을 [[프랑스령 앤냄]], [[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남부의 [[코친차이나]]로 나눈 것이다. 이 중 프랑스는 남부의 코친차이나만을 직접 통치하였고, 프랑스령 통킹과 프랑스령 안남은 형식상 응우옌 왕조의 황제들에게 맡기고 실질적, 간접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87년에 안남과 통킹, 코친차이나 지방을 모두 묶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세웠고, 응우옌 왕실은 [[허수아비(동음이의어)#s-2.1|허수아비]]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전혀 없는 괴뢰 정권 수준으로 격이 낮아졌다. 프랑스는 베트남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그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원을 뽑아먹을 수 있을까가 본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프랑스 총독부는 세금을 급격히 인상하고 [[소금]]을 전매, 마약인 [[아편]]을 공공연히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양의 이익을 벌어들였고,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7만 명에 달하는 인력들을 데려가 전선에 투입했다. 또한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들을 쥐어짜 유럽으로 운송해 갔고, 이때 워낙 많은 양의 [[쌀]]과 식량들을 방출해 간 탓에 베트남에서는 식량난과 기근이 돌기까지 했다. 이렇게 프랑스인들이 지나친 억압 정책을 펼치면서 베트남인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만연했고, 11대 황제인 [[주이떤 황제]]는 궁에서 도망쳐 베트남 저항군에 합류하려 시도하기까지 했다. 다만 프랑스 총독부가 미리 이를 파악하고 황제를 [[인도양]]의 [[레위니옹]]에 유폐해 버리면서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프랑스 총독부는 베트남에 [[라틴 문자]]를 도입하려 시도했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베트남어 표기법인 [[쯔꾸옥응으]]이다. 기초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한 프랑스는 효과적인 종교 전파를 위하여 기존에 쓰던 표기법인 쯔놈과 한자를 밀어내고 라틴어 알파벳을 도입했으며, 서양의 알파벳이 기존의 한자보다 훨씬 베트남어 표기가 쉬웠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수의 베트남인들이 쯔꾸옥응으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양의 물건이라고 거리끼던 베트남인들도 점차 쯔꾸옥응으의 편리함을 인지하고, 어차피 [[한자]]도 몇 천년간 적으로 지냈던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었기에 피장파장으로 결국 더 편리한 쯔꾸옥응으를 많이 썼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쯔꾸옥응으 등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베트남 내에 빠른 속도로 [[가톨릭]]을 전파해 나갔으며, 덕분에 응우옌 왕조 치하에서 탄압받던 기독교도들은 프랑스 치하에서 세가 급격히 불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